김호용 (공인회계사 / 작가)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만나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어릴 때는 비슷한 교실에 있었고, 비슷한 시간을 살았고, 비슷한 고민을 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은 각자 서로 다른 삶의 방향으로 흩어지지. 그리고 가치관도 달라지고, 삶의 내용도 달라지고, 지금 서 있는 자리도 모두 다른 상태에서 다시 만나게 돼.
그렇게 다른 모습인데 우리는 왜 다시 만날까? 주고받을 필요가 생겨서 일까? 경조사에 서로 얼굴 비춰 줄 사람이 필요해서 일까? 아니면 그저 오래 알았다는 이유 때문일까? 솔직히 말하면, 이유만 따지자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관계도 있어.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훨씬 편한 관계도 있어. 가치관이 비슷하고, 삶의 방향도 닮았고, 공통 관심사도 많고, 이야기할수록 서로에게 자극도 되고 배움도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대화도 편하고,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
그런데 모든 친구가 그런 관계일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는 고민해 봤어. 왜 만나지? 서로의 관심사가 겹치지도 않고, 서로에게서 배울 게 많아 보이지도 않고, 삶의 방향도 꽤 다른데 왜 굳이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 되는 거지? 서로의 현재에 예전만큼 깊은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그럼에도 왜 이 관계를 완전히 놓지는 못하는 걸까?
내게 남은 대답은 결국 이것이었어. “우정”
맞는 게 하나 없어도 마음 만큼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를 남겨 두는 관계. 이 사람에게서 특별한 도움이나 유익을 얻지 못해도, 마음 만큼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 관계. 나는 그 하나 때문에 친구를 만나왔던 것 같아.
그런데 이 마음마저 없다면 만날 이유가 있을까? 오래 만났다고 다 친구는 아니잖아.
'친구'라는 건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 더 가깝지. 그런데 그 마음마저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같은 시간을 공유했을 뿐, 우정이라 부르긴 어렵지. 그렇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마음을 지켜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우정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 늘 함께하지 않아도 되고,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어려운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생각이 달라도, 입장이 달라도, 그 마음 만큼은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태도. 그게 나에게는 우정이야.
가끔은 이런 순간도 있어. 내가 힘든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이유나 마음에는 관심 없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 버릴 때. 문득 "아, 이 사람은 내 상황보다 자기 생각을 먼저 말하고 싶은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생각이 다른 건 괜찮아. 삶의 해석이 다른 것도 괜찮아. 하지만 그 다름 앞에서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공감하려는 노력도 없다면 깊은 우정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든 게 맞지 않아도, 모든 생각이 같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 앞에서는 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한 번 더 들어줄 수 있는 관계. 상대의 말이 내 기준과 다를 때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한 번 더 헤아려 보려는 관계. 우정의 깊이는 얼마나 비슷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공감하려 애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
공감이란 "다 맞다"고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름 앞에서도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 같아.
그래서 나는 요즘 이 말을 자주 마음에 새겨. “공감은 우정을 오래 붙잡아주는 방식이다.” 우정을 원한다면 공감하려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하고, 공감이 사라진다면 우정도 서서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돼.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나. 그래서 더더욱 우정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맞는 게 하나 없어도, 마음 하나 만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다면, 그건 여전히 만날 이유가 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 '공감' 그건 '우정'의 또 다른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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