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垣, 이경국 (칼럼니스트)인생은 <주먹과 손바닥 사이>라 했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덜 아프기 마련이다.
일전에 <살아서 생지옥을 경험하다>라는 에세이를 쓰고 여지껏 쓴 글 가운데 가장 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평소 아프지 않게 지금까지 살아 왔는데 몇 번을 망설이다가 쓴 글이었다.
인체는 당연히 병이 생기고 아프기 마련이다. 필자는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성미다. 반면 평소 예방건강에 대해 무진 진력(盡力)을 다하는 편이다.
독감예방주사나 건강검진 조차 몇 년을 거르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 백신주사를 한번도 맞지 않고서 거뜬히 버티었다. 자랑이 아니라 코로나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감기나 몸살도 하루·이틀만 지나면 끝나는 몸이다. 결혼 후 "남편이 아프다"는 경험을 아내는 이번에 처음으로 했을 것이다. 아프고 나니 아내의 서비스가 엄청 달라졌다.
인간은 더러 아파야 건강의 소중함도 깨닫고 가족의 관심도 생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경을 헤맨 아픔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고통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워낙 창피스러워 구체적인 표현은 쓰지 않겠지만 그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강화도에서 꽃게탕을 먹었는데 양념한 새끼 게가 워낙 입에 당겨서 세 접시를 먹었다. 농담으로 "'개새끼'의 맛이 좋다"고 했는데...
강화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또 집에 도착해서 긴 시간 동안 고통에 떨며 "그 말이 천벌을 받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꽉 막혔던 고통'이 해결 된 순간 환희에 찬 모습으로 아내에게 "살았다"고 어린애처럼 말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 온 생환의 순간 참으로 세상이 찬란하리 만큼 달리 보였다.
그대로 표현을 하자면 생사의 경계에서 막혔던 숨통이 다시 트인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은 상상조차 하기 쉽지 않다.
이 일이 있은 후 고교 송년모임에서 건배사도 하고 부연설명도 하게 됐다. '꽉 막힌 지옥'에서의 생환을 축하하는 친구들의 박수소리도 컸다. 건배사는 "죽지 말자! 오래 살자!" 간단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말이다.
방귀가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대체로 하루에 10~ 25회 정도 방귀를 뀐다고 한다. 의사들은 수술 후 가스가 나와야 안심을 한다. '꽉 막힌 상태'가 소통이 되니 방귀가 마치 건강의 청신호처럼 여겨졌다.
인간의 존재는 위대하며 "생명의 가치는 우주와 같다"는 사실을 고통을 통해 체득하게 됐다.
아프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온 것은 "천지신명께서 돌봐 주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이번에 경험한 죽음(死)의 경계는 병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나무의 옹이처럼 여기는 여유가 생겼다.
아픔은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어쩌면 별난 기회이기도 하다. 농담처럼 늘 말해 오던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이즈음이다.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아픔의 연속이다. 이는 자녀를 키워 보아야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어찌 아픔까지 즐길 수 있으랴. 참아내는 습관(習)이 필요하다 싶다. 덜 찡그리고 사는 것은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